표현형의 분포와 적합성

활자에의 욕망 | 2008/03/21 14:14 | 이방인
유전 형질은 불연속적인 차이 혹은 연속적인 차이를 보인다. 유전 형질의 차이는 대립하는 유전형질 간의 선택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불연속적인 차이는 표현형에 관계하는 유전자가 소수이고 환경의 영향이 없거나 거의 중요하지 않을 때 나타나며, 고등학교 때 배운 귓불의 끝이 얼굴 살에 붙었는지 떨어졌는지의 여부, 혀말기가 가능한가 아닌가의 여부, 혈액형 등등이 있다.

연속적인 차이를 보이는 유전형질로는 지능, 키 등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미적 감각, 영적 능력, 운동 신경 등 숫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연속적인 차이는 형질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많으며, 다양한 환경의 영향이 있을 때 발생한다. 키를 예로 들면, 키에 관여하는 유전자(형질)들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다수이다. 성장 호르몬의 분비량, 성장판이 닫히는 시기, 소화기관의 흡수능력, 수면 사이클의 조정, 음식의 호불호 등이 키에 관여한다.  
그리고 앞서 나열한 그 형질들 역시 한두 가지의 유전자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유전자가 관여한다. 환경에 의한 영향은 훨씬 다양하며 연속적이다.

그럼 생존에 유리한 (평생 유전자를 퍼뜨리기에 유리한) 표현형의 수치는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키가 얼마쯤 돼야 개체의 유전자 확산에 가장 유리할까. (근사적으로 유전자의 유리함은 개체의 번식의 유리함으로 대체될 수 있다.) 그 유리함을 '적합성'이라고 명명하겠다.

그 각각의 유전자(형질)들 사이에도 서로 관여를 하지만, 문제를 간단하게 하기 위해 독립적이라고 가정하고, 완전히 성장했을 시의 표현형의 분포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기본적으로 평균 부분이 볼록한 정규분포를 이룰 것이라고 예상해볼 수 있다. 다만, 반드시 대칭이 되는 그래프가 나올 것이라는 가정은 할 수 없어서 최빈값과 평균값은 다를 수 있다.

'평생소득'처럼 (사회구조 등의) 환경의 영향이 큰 표현형(?)에서는 그 분포가 심한 비대칭을 이룰 수도 있지만 유전자의 영향이 더 큰 표현형에서는 최빈값과 평균값이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가정하겠다.

그렇게 가정을 했을 때 통계적으로 적합성이 가장 높은 표현형의 수치는 어떻게 될까. '유전자+환경'의 풀에서 생존의 적합성은 그 '유전자+환경'의 빈도수로 드러난다. 즉 최빈값이 적합성이 가장 높은 표현형의 값이라 할 수 있다. 앞서 평균값과 최빈값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평균값이 가장 적합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한국 남성의 평균 키가 내가 알기에는 174cm 정도 되는데, 남자가 180cm은 돼야지 않느냐고, 180도 요즘에는 작다고 (막말을) 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키 큰 사람을 선호하는 것에는 유전적, 사회적 이유가 있기 때문에 간단하게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렇더라도 평균값인 174cm가 자손을 퍼뜨리는데 적합성이 가장 높다니 조금 의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평균치와 실제 최고-적합성과의 차이가 있다면, 평균치는 실제 최고-적합성 값으로 서서히 이동할 것이다. 2세를 만들 때 배우자의 조건으로 점점 키가 큰 사람을 선호하게 된다면 실제로 그 값은 편할 것이다.
여기서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 그렇다면 한국 남성의 키가 수십 년 사이에 10cm 커진 것은 진화적인 압력 때문인가. 물론 그것은 환경적인 요인이다. 그러나 어렵게 생각할 필요없이 유전자+환경 풀에서 벌어지는 변화로 생각하면 된다. 여성이 남성을 배우자로 고를 때 이 풀 안에서만 가능한데, 환경의 제약이 있다면 그 제약에 따라경에 최고-적합성 값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 환경의 변화에 못 따라가는 개체가 있다면 (요즘에도 제대로 못 먹어서 많이 못 큰 사람들이 많듯이), 안타깝게도 유전자+환경 풀에서 그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실제로 최고-적합성이 지금 평균보다 더 큰 값에 있다면, 그리고 여성들의 선호가 키 큰 남자에게 몰린다면, 나는 결혼을 일찌감치 포기해야 한다.ㅠㅠ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품는 건 그 변화가 아주 천천히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환경으로 키를 변화시킬 가능성은 한국에서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른 것 같고, 유전자의 변화는 못 해도 몇천, 몇만 세대는 지나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씩 최고 적합성을 향해 평균이 움직일 것은 확실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큰 키를 선호하는 것은 유전자 지체 현상-유전자의 진화가 사회의 변화를 못 따라오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기에 장기적으로 계속 존재할 것 같지는 않다. 요즘 들어 키를 많이 따지는 것은 서구 사람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 탓인 것 같다.)

최고-적합성의 값과 평균의 값이 일치할 것이라는 가정을, 키뿐만 아니라, 지능, 영적인 능력, 예술 능력(미적 감각) 등에 적용해 보는 것도 재밌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데 높은 지능과 뛰어난 영적 능력이나 예술 능력이 필요하지는 않다. 오히려 가정생활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더 크다. 평범하다는 것은 진화게임에서 검증받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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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도자 2008/03/25 05:59

    인간의 경우 진화를 통한 형질의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지 않나? 산업사회의 경우 대부분의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든 번식을 하는 데다가 자식을 여럿 낳는 경우도 별로 없지. 거기에 각종 기술을 이용한 속이기가 횡횡하고 있으니... 속이기에는 성형 수술을 통한 외모의 표현형과 유전형의 불일치와 수 많은 거짓말이 있겠지 -_-. 하다 못해 거짓말은 좀 났네. 거짓말 실력이 좋은 후손을 낳을 가능성이 있으니. 그리고 수십년 어쩌면 100년 이상이 지난 뒤에는 인간의 진화는 자연선택의 손을 떠나 인간의 손으로 들어올 지 모르지. 수천 수만 세대에 걸친 장님 코끼리 더듬는 식의 시행착오를 통한 진화에서 벗어나서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통한 예측 그리고 유전자 직접 수정에 의한 진화의 시대가 열릴지도... GATTACA가 현실화 되는거지 =_=

  2. 잡상인(雜想人) 2008/03/25 13:27

    100년 이상 지난 뒤 인간이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조작하여 자식을 낳을 수 있다면, 그때는 상황이 복잡해지겠지만, 그 이전까지는 아주 서서히 유전자의 분포의 변화는 진행될 것 같은데. 질적인 변화야 있을 가능성이 매우 적지만, 양적인 변화는 아주 서서히 일어나겠지.어떤 사람은 '일반적으로 좋은' 형질을 지니고도 아기를 못 낳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음에도 아기를 많이 낳을 수 있지만, 평균을 따진다면 차이가 있겠지. 아주 서서히.. 아주 서서히.. 변화하겠지.
    그리고 성형을 통한 속이기 등은 앞서 말했듯 '유전자+환경'이라는 풀에서 생각해보면 일반화 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환경은 성형을 유명한 데서 할 수 있는 '돈'일테고, 얼굴 형질의 변화에서 '환경'의 영향은 커지고 유전자의 영향은 점점 작아진다고 할 수 있을테고.
    진화를 생존에 있어 결정적인 '형질의 질적인 변화'라고 정의한다면, 형질의 양적인 평균의 변화를 진화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평균은 변할 거라고 봐.
    인간이 유전자를 수정 때부터 조작할 수 있을 때가 온다면 진화학자들한테는 정말로 흥미로울 것 같다. 남부럽지 않은 자식을 낳고 싶은 고전적인 욕구와 신기술의 만남ㅋ
    만약 그 변화 양상을 유전자로 단순화시켜서 본다면 정말 재밌을 듯 ㅋㅋ

  3. 智熏 2008/03/25 18:22

    이 글을 위해 생각나는 기사 하나를 제공하겠다.

    http://www.nytimes.com/2006/03/07/science/07evolv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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