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이나 4명이 함께 모여 어딘가로 이동할 때 이런 대화가 오간 적이 있을 것이다. (사투리엔 신경쓰지 마시오.)
"버스 어디서 타노?"
"저기로 가야 된다."
"잠깐만, 택시 타도 거의 기본요금밖에 안 나온다 아이가, 택시 타는 게 더 싸다"
"그렇겠네, 그럼 택시 타자"
여기까진 좋다.
택시를 손을 들어 잡으면 눈치 싸움이 시작된다. 누가 앞에 탈 것인가!
말은 이렇게 한다.
"일단 내(네)가 내고 나중에 내려서 거두자."
그렇게 앞에 탄 사람이 일단 내지만 십중팔구 공평하게 나누자는 약속은 흐지부지 되거나, 돈을 낸 사람이 쿨한 척 "아, 됐다 그냥" 하고 넘어갈 때가 많다. 연장자가 무리에 있었다면 처음부터 그가 앞에 타서 돈을 낸다.
나는 이것이 항상 불만이었다. 3~4명이 나눠서 냈을 때 버스를 탈 때보다 싼 거지 한 사람이 다 낼거면 뭐하려고 택시를 탄 걸까. 그런데 택시요금이란 게 얼마 나올지가 불확실하기에 미리 거두기도 그렇고 세명이나 네명으로 딱 떨어지는 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동전까지 정확히 나눌 수도 없고 애매하긴 하다. 거의 도착했을 즈음에 요금을 보고 뒷자석에 앉은 사람들이 슬그머니 돈을 거두어 앞사람에게 주면 감지덕지 하지만, 앞사람이 먼저 말하긴 쪼잔해 보인다. 특히 연장자라면 어떻게 먼저 말을 꺼내겠는가. 앞사람이 말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동전 있나" 정도?
가장 이상적인 건 미리 회비를 거두어 회비로 모든 경비를 해결하는 것이고, 그렇게 안 했다면 택시비를 낸 사람이 다른 경비에서 택시비만큼 적게 내도록 해야 한다.
버스를 타면 공평하지만 전체 지출은 커지고, 택시를 타면 전체 지출이 작지만 한 사람이 모두 내야 하는 상황.
'택시 게임'이라고 이름 붙여보자. 이상화를 위해 택시를 타는 상황은 무조건 한 사람만 요금을 내야 한다고 가정한다.
예컨데 네 명의 사람이 버스를 타면 모두 -2 씩의 손해를 감수한다. 총 지출은 -8이다. 택시를 타면 요금이 -6만큼 나오지만 한 사람만 -6을 다 내고 나머지는 손해가 0이다.
이 게임의 딜레마는 모두가 공평해지려면 전체적으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택시 뒷자리에 앉은 다수는 절대적인 이득을 얻지만 앞에 앉은 한 사람(소수)은 절대적 손해를 본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협력-협력의 전체 이익이 협력-배신의 전체 이익보다 낮은 상황이라고 가정할 수도 있다. 다만 배신-배신을 어떻게 설정할지의 문제와 앞자리 탈 사람을 선정하는 과정의 묘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죄수의 딜레마' 게임으로의 일반화는 되지 않는다.)
인류에게 어느 날 다음과 같은 제안이 주어졌다. 한 사람을 골라 죽이면 나머지 전체가 더 윤택하게 살 수 있다. 골라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나머지가 모두 죽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체가 노예수준으로 전락할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을 고르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 상황이라면 정원을 한 명 넘은 '구명 보트 게임'이라고 부르면 적당할 것 같다)
이런 상황은 제물로 '희생양'을 쓰기 전에 실제로 인류에게 처해졌던 상황이다. 가축이나 음식 이전에는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한국 설화에도 심청이가 있다)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모두가 불안하다. 단지 그 뿐이다. 모두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한 사람을 죽여야 했다. 이것이 '택시게임'이 되려면 제물을 바치지 않았을 때의 불안의 합의 크기가 개인의 죽음보다 커야 한다. 지금이야 전체의 불안과 한 사람의 목숨의 가치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냐마는 그 시대에는 희생양으로 걸릴 불안감보다 희생양을 바치지 않았을 때의 불안감이 더 컸기에 그러한 문화가 생겼을 것이다.
그럼 현대 사회에서도 '택시 게임'과 같은 상황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상화에 정확히 들어맞는 예는 찾기 어렵지만 비슷한 예는 찾을 수 있다. 효율성과 형평성이 부딪치는 논제들은 대부분 택시 게임과 비슷한 양상이다. 예컨데, 고교 평준화, 자립형 사립고 논쟁 등은 앞에 탄 사람이 다수고 뒤에 탄 사람이 소수라는 점을 빼고는 택시게임과 유사하다. 서열화와 자립형 사립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전체적인 교육 효율이 더 높다고 주장한다. 즉, 택시 타는 게 더 이득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형평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버스나 택시나 가격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평준화든 서열화든 성적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혹은 마음속으로 평준화가 하향 평준화가 될지라도 별로 차이 나지 않는 가격에 일부만 택시 뒤에서 이득을 챙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도 '택시 게임'에 비유될 수 있다.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노동조건을 주지 않았다면 급속 성장은 불가능했다. 전체의 부는 올라갔지만 노동자 중 일부는 지나친 노동으로 목숨을 잃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만 77명이 목숨을 잃었다.(이전에 77명의 희생자를 마치 숭고한 애국자로 치장하며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자랑스러워하는 광고를 볼 땐 정말 역겨웠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 장애인이 된 사람, 분진을 많이 마셔 폐병으로 지금도 고생하는 사람 등은 앞자리에서 요금을 지불한 사람들이다. 꼭 그들이 아니더라도 그 당시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은 모두 '경제 발전'이라는 택시의 앞좌석에 탔던 사람들이다.
처음부터 버스를 같이 타는 것은 불가능했을까. 이건 지금도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의 딜레마다. 정당한 임금과 근무시간으로 급속한 성장은 불가능할 것 같은데 점진적인 성장도 불가능할까? 이게 논쟁거리다. 급속경제발전이라는 택시를 탄다면 대부분의 경우 앞에 탈 사람과 뒤에 탈 사람은 미리 정해져 있다. 그것이 문제이기도 하다.
이미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은 이제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을 택시 앞자리로 내몰고 있다. 대통령은 '국가 간의 전쟁(경쟁도 아닌!)'이라는 표현도 서슴치 않으며 거시 경제 지표 상승에 매달리지만, 정말 택시를 타는 게 버스보다 싼 상황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가야 할 지점이 멀면 멀수록 버스를 타는 게 싸듯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더 손해일 수 있다. 택시를 타는 것이 더 비싸진 상황임에도 굳이 택시를 타겠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뒷자리에 앉을 것이 확실한 사람들이 편하게 빨리 가고 요금은 한 푼도 지불하지 않겠다는 속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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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흥미롭게 잘쓰시네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