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권의 부제는 '에셔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입니다. 에셔의 작품이 챕터 중간마다 들어가 각 챕터의 연결 고리와 프롤로그 역할을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에셔의 그림들에 뿅 가고 말았습니다. 완전 제 스타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에셔의 작품은 메시지가 명확합니다. (물론 그 메시지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긴 합니다만) 그래서 느낌을 억지로 언어로 번역하지 않아도 이야기거리가 있습니다.


첫번째 그림의 제목은 '도마뱀'입니다. 도마뱀은 평면 그림에서 나와 주변 사물을 걸어 다닌 뒤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림 속 도마뱀 그림은 정육각형을 균등분할하여 그린 것입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시면 빈틈없이 도마뱀들이 가득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평면의 균등분할은 에셔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에셔는 평면을 가득채운 균등분할이 이상의 세계에서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였는지 모릅니다. 그 이데아의 세계에서 생명을 얻은 도마뱀은 그림 밖을 기어 나옵니다.
마치 우리가 사는 세상의 도마뱀들은 저 가득찬 평면에서 하나씩 떨어져 나온 것들 같습니다.


두번째 그림은 '해방'이라는 작품입니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기하학적 형태에서 생명을 얻어 새가 날아 오릅니다. 그리고 그 새들도 자세히 보시면 평면을 가득 채운 균등분할에서 나왔습니다. 여백은 또하나의 개체를 만듭니다. 이상적인 세계에서 여백은 단순한 여백이 아닙니다.


세번째 그림은 '하늘과 물'이라는 작품입니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여백은 그냥 여백이 아닙니다. 어느 것이 여백인지 구분 할 수 없는 경계선에서 위쪽으로는 새가 되고 아래쪽으로는 물고기가 됩니다. 처음엔 하나로 가득차 있던 것들이 바다로 하늘로 갈라집니다.


네번째 그림을 보시겠습니다. '만남'이라는 작품입니다. 작품의 내용은 앞의 작품과 같습니다. 저 먼 곳 배경에서, 사람의 형체가 드러나오고, 그 형체는 다시 3차원의 공간을 걸어다닙니다. 자세히 보시면 역시 절묘하게 여백이 또하나의 형체를 만듭니다.

앞의 네 그림의 공통점은 쉽게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평면을 가득 채운 형체가 생명을 얻어 바깥 세상으로 뛰쳐 나옵니다. 평면에 여백이란 것은 없습니다. 여백이었던 곳은 또 하나의 생명체일 뿐입니다.
두가지로 분할하여 나오는 것은 '선'과 '악'일 수도 있고, '남'과 '여'일 수도 있습니다. 이분법의 폭력으로 구분지어진 어떤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저 먼 반대편에서 온 것이 아닌, 다른 하나의 여백일 뿐입니다. 그 두가지는 '만남'이라는 작품에서 드디어 만납니다. 그들은 애초에 다른 게 아니었지만, 인간이 인지하는 삼차원의 세계에 오면서 갈라졌습니다. 자신의 여백과의 만남. 짜릿하지 않습니까?


앞서의 '도마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균등분할 된 평면인 2차원에서 도마뱀이 나와 3차원 공간을 걸어다닙니다. 그러나 사실 그 3차원 공간도 2차원 공간에 그려진 것일 뿐입니다.
마지막 그림 '그리는 손'도 마찬가지입니다. 2차원의 그려진 두 손이 3차원의 생명을 얻어 서로를 마무리하지만 그것들도 사실은 2차원 공간 속의 그림일 뿐입니다. 너무나 진짜 같은 2차원은 3차원의 허상을 만들고, 그 3차원의 허상이 다시 2차원의 그림에 생명을 넣어주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어떤 것이 실재인지 알 수 없는 차원의 넘나듬이 있습니다.
오른손이 먼저일까. 왼손이 먼저일까. 그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입니다.
본질에 대한 물음. 여백과 실재가 구분되지 않고, 실재와 이데아를 넘나드는 그림이 에셔 그림의 특징입니다.



참고도서
1.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1, 휴머니스트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글의 관련글
2008/12/26 10:42 2008/12/26 10:42
Trackback address :: http://www.nanael.net/trackback/351

Comments List

  1. 수영 2009/01/02 10:17

    이야 도비양반 이제 에셔에게도 손을 뻗는구나

  2. 수영 2009/02/20 09:56

    요즘 에셔 작품들 찾아보고있어서 생각나서 발도장 ㅎㅎ

    • 잡상인(雜想人) 2009/02/20 11:06

      나는 손을 뻗고 너는 거기에 발을 찍고.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