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과를 다니던 친구가 시인이 됐다고 연락이 왔다. 원래는 소설을 쓰고 싶어하던 친구였는데, 시인이 먼저 되었다. '대산대학문학상'이라는데 나는 물론 처음 듣지만, 상금의 크기를 비교했을 때 메이저 중에 메이저 급인 것 같다. 게다가 '창작과 비평' 봄호에 실릴 거라고 하니 말 다했다.
진심으로 기분이 좋다. 마음 속으로 들리지 않게 짝짝짝.
나도 그 친구에게 여러 번 시를 써보라고 권한 적이 있었다. 내가 권하지 않았더라도 시를 썼을 거란 사실은 분명하지만, 사람 알아봤다는 우쭐함은 가시질 않는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나는 네가 잘 될 줄 옛날에 알아봤었어" 같은 기억왜곡을 심리학 용어로 사후확신편향(hindsight bias)라고 한다. 사후확신평향일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나는 그 친구의 시를 좋아했고, 소설에서의 시적인 표현들이 소설 전체 내용보다 기억에 남았었다.
그 친구는 항상 자신이 쓴 작품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부족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일종의 훼이크 또는 과도하게 올라오는 자만심을 억제하려는 반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친구는 진심 같았다. 왜냐면 정말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시와 소설을 읽고도 자기가 쓴 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눈이 없다면 말이 안 된다.
물론 객관적 평가와 다르게 자기 자신의 작품을 천대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그것은 마치 자기 자식을 주관의 눈을 버리고 객관적인 눈으로만 평가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못나기 그지 없다는 것을 알더라도, 다시 보면 예쁠 수밖에 없는 자식처럼, 형편없는 작품이란 걸 알면서도 애정이 느껴지는 것이 자기가 만들어 낸 창작품이다. 어느정도의 나르시시즘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듯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일정도의 자아도취는 창작에 필수요소인 것 같다.
그 자아도취를 감안하면서도 진심으로 부끄러울 수 있으려면, 정말 대단한 내공이 아니고서는 어렵다.
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봐도 우쭐하고, 자아도취에 있을 때는 전문가로부터의 평이 박했던 반면, 자꾸 부족한 점이 생각나고, 전문가가 볼 생각을 하면 부끄러워 낯뜨거워질 때는 의외로 평이 좋았었는데, 이것으로 성급하지만 일반화를 할 수 있을까. 진심으로 겸손했을 때, 타인으로부터의 평이 좋다? 아니면 진짜 겸손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것을 반영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그런 겉보기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아님 그냥 너무 성급한 일반화였거나.
아무튼 이 글의 목적은 친구 자랑이다. 그리고 나중에 또 확증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여기 증거를 남겨야겠다. 워낙에 시가 마니아들의 문화가 되어버렸고, 그 친구는 대중적인 소통을 창작의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라(작가주의!) 대중들이 다 알만할 정도로 유명해질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평단에서는 항상 주목받는 시인이 될 것이 분명하다. 시집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 친구는 사물을 보는 눈이 새롭고, 섬세함이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어떤 시로 심사위원들을 감동시켰는지 창작과 비평 봄호를 기다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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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ist
대단하넹. 대산문학상 가장 권위있는(?) 상 중에 하나야. 소위 잘나가는(책 잘팔리는) 신출 작가들 중엔 이 통로를 거친 사람이 많아. 물론 내가 말하는 건 소설 분야고. 시는 잘 모르겠답. -__ 난 소설을 입맛으로밖에 안읽어서 몰랐었는데 대산문화재단 사업에 나도 연루되고부터 대산문학상 수상자들 강연 참여 기회가 자주 생기더군.
암튼 담에 보자고. 물리공부좀 하고 그래 ㅋㅋ.
근데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모해야하니. o_o
공부는 여전히 재밌는데 이젠 어깨가 많이 무겁구낭.
내 주위에 대산문화재단 사업에 연루된 사람이 두명이나 있네. 너는 어떤 연유로 그리 되었니.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친구 자랑이나 하며 살아야지ㅋㅋㅋ
먹고 살 걱정 안 하고, 체면 차릴 걱정 덜해도 되는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싶지만, 이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ㅠ
내 글쓰기 과외선생님이시다. ㅋㅋ
부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