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냐, 키 작고 곱슬머리에.."
누구를 말하는지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할 때, 외모적 특징을 들어 기억을 유도한다.
키, 점, 안경, 헤어스타일, 눈코입, 얼굴형, 목소리 등등.
내가 인상적이었던 특징은 다른 사람에게도 인상적일 것이라는 가정하에 가장 연상을 쉽게 불러일으키는 특징을 먼저 말한다.
연상이 용이한 특징은 조금 더 특이한 성모이며,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특징이다.
불로그의 태그처럼 각 사람을 기억할 때 우리는 각종 꼬리표들을 단다. 그리고 꼬리표의 순서는 앞서 말한 조금 더 연상을 일으키기 쉬운 특징이다.
예를 들어 키 180에 안경을 쓰고 머리가 벗겨진 20대가 있다면, 우리는 안경 쓴 특징보다 머리가 벗겨진 특징을 더 잘 기억하고, 이 특징이 연상에 사용된다. 그 특징을 먼저 말해도 상대방이 기억하지 못하면 키 크고, 안경 쓰고, 라는 부연설명을 할 것이다.
반면 똑같은 특징의 80대 노인이 있다면, 머리가 벗겨졌다는 특징보다 키가 크다는 특징을 먼저 언급할 것이다.
한번에 기억날만한 외모적 특징은 대부분 좋지 않은 것이다. 평균적이고, 일반적인 것은 구분짓는 특징이 될 수 없고, 꼬리표로 달리지 않는다. '잘생겼다'는 특징을 설명해봤자 특정인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보통 남과 다른 성모가 특징이 되며 당사자에게는 컴플렉스가 될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꼬리표달기라는 인식체계를 통해 (사회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외모적 특징의 위계 아닌 위계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어렸을 때 왼쪽 눈 위에 난 점이 컴플렉스였다. 사실 지금 보면 그렇게 큰 점은 아닌데, 그 때는 그 점이 부끄러워, 여자애들에게 오른쪽 옆모습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점 때문에 여자들이 날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학교, 고등학교로 넘어오면서 점에 대한 컴플렉스 대신 키가 작다는 컴플렉스가 나를 지배했다. 점에 대한 컴플렉스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키작은 컴플렉스가 덮어버린 것이다. 작은 그림자를 더 큰 그림자가 덮은 것과 같다. 그 때는 키 때문에 여자들이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다.(점 때문이라는 건 깜빡 잊고?)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탈모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는 키가 아니라 넓은 이마가 주 컴플렉스가 되었다. 사람들을 볼 때 앞이마부터 먼저 보게 되고,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나의 메인 컴플렉스의 변화는 사회적인 시선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다. 왼쪽 눈에 난 점은 사회적으로 크게 인상을 줄 수 없는 특징에 대한 혼자만의 망상이었고, 키는 (젊은 나이에) 이미지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특징이기에 걱정할만했지만, 탈모보다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탈모는 젊은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신체적 특징인데, 솔직히 많이 걱정할만하다.
키가 작고, 탈모인 젊은 사람이 있다면, 탈모가 더 충격적이기에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인상으로 사용될 확률이 높다.
물론 각 특징의 정도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질수도 있다. 만약 점이 코 옆에 커다랗게 있다면 키, 탈모보다 큰 특징이 된다. 키가 심각할 정도로 작다면 역시 키가 주요특징이 될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키가 작다는 이미지를 먼저 외모적 특징으로 떠올리겠지만, 막을 수 없는 유전자의 운명으로 탈모가 정말로 진행이 된다면, 어느순간부터 키보다 탈모를 특징 설명으로 먼저 사용하는 날이 올 것이다.
외모가 아닌 특징들은 어떨까. 외모가 아닌 특징으로 특정인을 설명할 때는 그 사회에서의 지배적인 가치가 반영된다.
"걔 있잖아, 서울대 다니고.. 안경 쓰고, 키 크고.."
"그 아줌마, 이번에 아들 삼성에 취직했다는.."
외모 외적인 면은 주로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특징들을 대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먼저 소개하지 않으면 외모이외의 사실들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며, 자신이나 자신의 지인을 소개할 때 치부를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대학을 다니고, 어느 회사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카테고리 형성이 끝나는 한국인의 인식체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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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좀 실험적인 모임을 한번 갔다왔어. 서로 그러자고 한적 없지만, 무조건 반말, 나이, 대학, 출신을 묻지 않는 그런 모임이었다. 그냥 낯선 것 외엔 모든게 다 좋다. '내가 만약 저 사람의 대학을 알고있었다면?'하는 상상을 하니 어떻게 내가 저 사람을 낙인했을까 하는 생각에 발이 저린다. 정말 이런 소규모 공동체에서라도 상식적인게 비상식일 수도 있다는 상식을 되새겨볼 수 있다는게 좋다.
무슨 모임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