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

책의 여백 | 2007/09/09 14:41 | 이방인

나는 심리학을 좋아한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진화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진화 심리학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진화 심리학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 또 진화심리학이 심리학 분야에서의 주류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심리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는 친구한테 물어도 진화 심리학의 입문 책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시중에 나와있는 진화심리학에 관한 서적을 찾아서 읽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처음 고른 책이 '하룻밤의 지식여행' 시리즈 중 하나인 '진화심리학'이라는 책이었다. 페이지 수도 얼마 안 되고, 글보다 그림이 많은 책이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진화심리학이 어떤 것인지, 어떤 이론들이 있는지 개략적으로만 알고 싶을 때는 이보다 더 적절한 책은 없는 것 같다.(물론 이것밖에 안 읽어봤지만)

진화심리학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마음의 설계 또한 진화적인 선택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진화심리학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개념은 각자 자신만의 규칙을 지니고 있는 특수 목적 프로그램들을 의미하는 '모듈'이다. 책에 든 예로는 위험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포식 동물 탐지 모듈', '먹이 선호 모듈', '자식과 친척을 돕는 모듈' 등 특정한 목적과 행위를 가진 모듈들이 있다. 진화심리학자 존 투비(John Tooby)와 레다 코스미데스(Leda Cosmides)는 이러한 모듈들이 수백 내지 수천개가 있으며, 이것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인간의 마음을 작동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모듈 중 몇가지들을 골라 이것들이 어떻게 작동하고, 그것이 왜 진화적으로 유리함을 가져왔는지를 투박한 그림과 함께 설명한다.

그 설명 중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주제들을 소개하려 한다.



1. 언어의 목적

지금의 마음을 형성한 인류의 조상은 약 600만년 전에 동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생겨나 10만년까지 그곳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0만년 전 쯤부터 전세계로 퍼지기 시작해 지금의 인류로 분화된 것이라고 책에선 말한다. 그런데 거의 모든 인류는 언어 모듈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모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비록 배우는 언어는 다를지라도, 유전적으로 타고나지 않으면 불가능해 보이는 언어 습득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지로 퍼져 나갔던 인류가 동시에 언어 모듈을 각자 습득했을 확률은 매우 희박하기 때문에 아마 언어 습득 능력은 10만년 보다 더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은 왜 언어 모듈을 필요로 했을까. 언어를 배우지 못하는 유전자는 살아남지 못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인간이 언어라는 의사소통 체계를 발전시킨 이유를 사냥에서의 협동을 쉽게 하기 위해서라고 배웠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시된 로빈 던바(Robin Dunbar)의 이론에 따르면 언어의 1차적인 목적은 바로 '뒷담화' 이다. 즉, '사회적 정보 교환'이 언어의 1차적 목적이다. 인류는 50만 년 전과 20만 년 전 사이에 급격한 사회 인구의 증가를 겪었다고 던바는 주장한다. 한 무리의 구성원은 대략 150명 전후였고, 이는 사회적인 협력과 충돌이 빈번했음을 의미한다. 단체 생활은 기본적으로 상호 이타주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어느 사회든 이런 상호 이타주의를 위반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해치는 구성원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직접 지내보면서 저 사람이 이기적이고 나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의 구성원들이 점점 커지면서, 일일이 그들과 대면하면서 그들의 성격을 파악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은 직접 부딪치는 대신에, 사람들 사이의 뒷얘기를 통해서, 타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였다. 누구는 거짓말을 잘 하더라, 사기를 잘 치더라, 누구는 정말로 친절하더라 누구는 바람둥이더라 등등의 얘기는 모두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다.

또한 말을 통해 '평판'이라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베풀 때 그 사람에게서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는지를 계산해야 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 그 사람과 다시 부딪칠 일이 없을 것 같다면 그 도움을 갚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그러나 말을 통해 평판이 가능해지면서, 자신이 돌려 받을 수 없는 상대방에게도 친절을 베푸는 것이 자신에게 이점이 될 수 있었고, 도움을 갚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되었다. 즉, 소문을 통해 그에 대한 평판이 형성될 수 있었기 때문에 타인에게 잘 해주는 것이 간접적인 상호작용으로 자신에게 되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개인에게 유리했을 뿐 아니라, 집단 전체를 봤을 때도 이타주의를 더 강력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요소였다.
지금에 와서도 우리는 남의 얘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뒷담화를 하는 것은 평판에 좋지 않기 때문에 자제하기도 하지만 듣는 것까지 피하진 않는다. 우리가 잡담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언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으며, 그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2. '글'은 부수효과일 뿐이다

모든 생물학적 특징과 심리학적 특징을 진화의 산물이라고 가정하면 오류를 범하기 쉽다. 앞서 말했듯이 진화심리학에서는 수천개 정도의 모듈을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복잡한 능력은 이보다 훨씬 많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인간의 능력은 여러가지 모듈들이 함께 작용하며 생긴 모듈 개발의 부산물들이다. 즉 우리에게는 스타크래프트를 잘 하게 하는 유전자나, 축구를 잘하는 유전자, 성대모사를 잘 하는 유전자, 혹은 모듈 따위는 없다. 단지 다른 모듈에 의한 부수효과일 뿐이다.

문자가 발명된 지는 오천년밖에 안 된다. 오천년은 유전자의 적응을 가져오기에는 지극히 짧은 시간이다. 그러므로 문자를 쓰고 읽는 능력 또한 시각 모듈이나, 언어 모듈 등이 함께 작용하며 생긴 부수효과일 것이다. 이 부수효과가 없었다면 이 블로그도 존재하지 못했을테지만, 문자가 인류에게 미친 영향은 그것보다 훨씬 크다.

문자는 더욱 정교해지면서 지식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였고, 그것은 인류 문명을 탄생하게 하였다. 문명의 발전은 유전자의 진화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유전자 지체 현상을 가져오게 되었다. 부수효과가 자연선택에 의해 생긴 모듈과 발전된 사회적 환경 간의 긴장을 불러온 것이다.



3. 무임승차자 문제의 해결을 위한 조건

어느 사회에든 무임 승차자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공공의 도움을 받고 그 자신은 그 도움을 갚지 않는다. 혼자서만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나름의 생존전략이다. 집단은 이러한 무임 승차자들을 잡기 위한 방법을 개발하고, 무임 승차자는 그것을 피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한다. 서로의 공진화가 이루어지며 결국 무임승차자는 지금에 와서도 존재하고 있다. 이 무임승차자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놔두게 되면 집단은 성공할 수 없다. 공공의 이익을 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다보면 이타주의가 제대로 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종이든, 어느 사회든 무임 승차자를 잡기 위한 방법을 고안 했는데, 그 구체적인 방법에 상관없이 그 해결책이 반드시 만족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1980년대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Robert Axelrod)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다음과 같은 필요 조건을 제시하였다. (책에 있는 문장을 그대로 가져왔다.)

1. "어떤 종의 생물들이 똑같은 종의 생물들을 반복적으로 만난다."
2. "그 생물들은 상대방을 이전에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며, 다른 동물 종과 구별할 수 있다."
3. "이전에 만났던 상대방이 자신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할 수 있다."

이 조건이 갖추어지면, 협력자와 무임 승차자를 구분하여 대응할 수 있다. 책에서는 첫번째 조건은 100~150명 정도로 사회 집단을 이루고 살았던 것에서 만족되며, 두번째 조건은 정교한 안면 인식 능력을 통해, 세번째 조건은 기억 모듈의 발전을 통해 가능했다고 한다.

이러한 조건을 통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tit-for-tat', 'give-and-take'이다. 상대방이 한 것을 기억하고 그대로 상대방에게 베푸는 것이 가장 그럴싸한 전략이다. 물론 실제 세계에서는 평판을 이용하거나 마음을 돌리기 위해 'give-and-take' 전략을 쓰지 않는 등 더 다양한 생존 전략이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받은대로 주기' 전략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도 가장 좋은 전략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각 인자들이 한번씩만 게임을 하게 하거나 그 전적을 노출하지 못하게 하면 모두 서로를 고발하는 전략을 택하게 된다. 둘 다 협력하는 것보다 항상 좋지 않은 결과를 얻지만, 그것이 가장 기대값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인자들이 여러번 만나게 하고, 각각의 전적을 알 수 있게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 때는 협력적인 개인에겐 협력으로, 비협력적인 개인에겐 비협력으로 대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다. 역시 두번째 조건과 세번째 조건이 충족이 되면, 협력이라는 것이 가능하게 되고, 무임승차자를 가려낼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참조 및 인용
달런 에번스(이충호 역), 진화심리학, 김영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글의 관련글
2007/09/09 14:41 2007/09/09 14:41
Trackback address :: http://www.nanael.net/trackback/130

Comments List

Write a comment.